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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1.30 이순신 장군은 승리의 나팔을 불지 않았다

“당시 드넓은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여러 함선에 승선한 장수들과 북과 나팔, 깃발 등만으로는 긴밀한 의사소통이 어려웠을 거라는 가설에서 착안해 논문 주제를 결정했다”라거나 “승전한 견훤의 군사들이 승리를 기념하며 나팔을 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등은 신문과 방송 등에서 자주 보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담겨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나팔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을 리 없기 때문이지요.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견훤의 군사들이 승리를 기념해 나팔을 불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우리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나올 수도 없지요.

왜냐고요?

그것은 ‘나팔’이 우리의 악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양 악기이죠. 나팔과 비슷한 우리 악기는 ‘나발’입니다.

‘나발’은 한자로 ‘喇叭’로 씁니다. 산스크리트어(범어)의 ‘rappa’에서 온 말인데, 여기에는 “입을 크게 벌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중국에서 나팔(喇叭)이라고 번역한 것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고 하네요. 또 ‘喇’는 “나팔 라(두음법칙을 적용하면 ‘나’)” 또는 “승려 라”로, ‘叭’은 “입 벌릴 팔” “나팔 팔”로 읽히는 한자입니다. 따라서 ‘喇叭’을 ‘나팔’로 적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고요? 왜긴요. 우리말이 원래 그렇습니다.

우리말에는 한자의 훈과 한글의 표기가 다른 것이 무척 많습니다. ‘初生달’을 ‘초승달’로 적는 것도 그중 하나죠. 범어에서는 그런 말이 더 많습니다. 누구나 아는 ‘나무아미타불’도 한자 표기는 ‘南無阿彌陀佛(남무아미타불)’입니다. 불교에서 “온 세계”를 뜻하는 ‘시방세계’ 역시 한자 표기는 ‘十方世界(십방세계)’이고요.

 

 

“금속으로 만든 관악기 중 하나로, 군대에서 행군하거나 신호할 때 쓰는 우리 악기”도 한자로는 ‘喇叭(나팔)’로 적지만 한글로는 ‘나발’로 써야 합니다. 그게 우리말법입니다.

이와 관련해 국립국어원도 표준어규정 2장 1절 3항 해설을 빌려 “‘나발’은 옛 관악기의 하나이고, ‘나팔’은 금속으로 만든 관악기의 하나다. 이 둘은 구별해서 써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이 썼던 악기는 ‘나발’이고,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대 악기는 ‘나팔’이라는 얘기입니다. 사진 위의 것이 ‘나발’이고, 아래의 것이 ‘나팔’입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소주를 병째 벌컥벌컥 마시는 것을 두고 ‘나팔을 분다’ 또는 ‘병나팔 분다’라고 말하는데, 이때는 굳이 ‘(병)나발을 분다’고 쓸 필요가 없습니다. 관용적 표현으로 둘 다 인정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당치 않은 말을 함부로 하다”(나발 불지 말고 잠자코 있어)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말을 하다”(어디서 그런 가짜를 진짜라고 나발을 불어) “어떤 사실을 자백하다”(시치미 떼. 알겠니? 나발 불었다가는 우리는 끝장이다) “어린아이가 소리 내어 시끄럽게 울다”(갓난아이가 아까부터 계속해서 나발을 분다) 등의 의미를 나타낼 때도 ‘나발’ 대신 ‘나팔’을 쓸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실 때는 ‘나발’만 있고 ‘나팔’이 없었지만, 현대인에게는 거꾸로 ‘나팔’은 익숙한 반면 ‘나발’은 낯설어서 ‘나발’보다 ‘나팔’이 더 널리 쓰이는 점을 살펴 두 말을 모두 관용적 표현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국립국어원요!

Posted by marg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