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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달콤한 휴식에 빠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구정으로 부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양력 11일을 신정이라 하고, 이에 대립하여 음력 11일을 구정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이 말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단어입니다.

 

왜냐고요? ‘구정에는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한 일본의 교묘한 술책과 정치군인들이 국민들을 산업 현장으로만 내몰려 한 노동착취의 술수가 담긴 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1895년께 일본의 영향으로 양력을 채택하게 됐지요.

 

이후 일본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없애려 합니다. 자신들의 통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자기네처럼 양력 11일을 공식 명절로 지정하고, 음력 11일에 설을 지내는 것을 탄압합니다. 설 며칠 전부터 방앗간 영업을 금지하고, 설날에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뒤져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은 벌을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양력 11일을 신정으로, 음력 11일을 구정으로 여기는 생각이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도 자연스레 각인됩니다. ‘신정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바람직한 날로, ‘구정은 하루빨리 없애야 할 구습으로요.

 

여러분은 신세대로 불리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구세대로 불리기를 바라나요. 또 집에 신제품이 가득한 것이 좋은가요, 구닥다리가 넘쳐나는 게 좋은가요? 당연히 신세대로 불리기를 바라고 신제품이 좋겠죠. 결국 신정은 긍정적 개념을, ‘구정은 부정적 개념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1949년에 양력 11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1950년부터 대한민국의 신정이 시작됩니다.

 

1961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더욱 심해집니다. 우리 생활에 양력이 완전히 정착하면서 설은 쇠서는 안 되는 날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설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것이지요. 일제가 그러했던 것처럼요. 여기에는 노동자들을 일터로만 내몰려는 못된 경제제일주의도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설 명절에 관한 국민감정이 악화되자 1980년대 중반 그동안 부정적 이미지로 불리던 구정민속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옛 이름 설날도 찾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3일이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추석과 함께 우리 고유의 최대 명절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이제 신정구정의 구분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구정설날이 됐으니, 더 이상 신정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설날은 당연히 음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굳이 음력설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일본의 설날을 멋진 신정으로 불러주고, 우리의 설날을 못된 구정으로 부르는 언어습관은 하루바삐 바로잡혀야 합니다.

Posted by margeul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말이 성경에 나온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잘 아실 듯합니다.


그런데요. 이 말대로라면 부자는 무조건 지옥에 가야 합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우니, 거의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종교를 떠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현명한 ‘지혜’들을 담고 있는 성경에 왜 이런 극단적인 표현이 적혀 있는 것일까요? 아니, 극단적이라기보다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 더 적확하겠네요. 낙타와 바늘구멍은 도저히 격이 맞지 않으니까요.


이에 대해서는 번역의 오류가 빚어낸 잘못된 문장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로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말이라는 아람어로 밧줄(gamta)과 낙타(gamla)는 철자 하나만 다르답니다. 이를 훗날 번역자가 혼동해 ‘밧줄’을 ‘낙타’로 잘못 적어놓은 것이 널리 퍼져 지금에 이르게 됐다네요.


즉 이 표현은 ‘권력이 있거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도 약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 밧줄 같은 자신을 가는 실로 만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거라고 합니다. 참 멋진 비유입니다. 그것을 오역해 놓은 것이라면 참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낙타’를 ‘밧줄’로 바로잡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미 굳을 대로 굳은 말이므로, 그냥 써도 됩니다.


그런데요. 낙타가 예전 성경에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따위처럼 ‘약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약대’가 ‘낙타’로 고쳐졌지요. 저는 이 부분이 더욱 아쉽습니다.


‘약대’는 한자말 ‘낙타(駱駝 )’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석보상절>(세종 28년에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에 따라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쓴 책)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쓰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순우리말 ‘약대’가 한자말 ‘낙타’에 완전히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합니다.


또 우리가 흔히 ‘바늘구멍’이라고 하는 것을 성경은 ‘바늘귀’라고 제대로 쓰고 있음도 눈길을 끕니다. 원래 ‘바늘구멍’이라고 하면 “바늘로 뚫은 작은 구멍”을 뜻합니다. “실을 꿰기 위해 바늘의 위쪽에 뚫은 구멍”은 ‘바늘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나없이 ‘바늘구멍’을 쓰는 까닭에 사전들도 ‘바늘구멍’의 또 다른 뜻으로 ‘바늘귀’를 다뤄놓고 있습니다.


한편 바늘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한 뜸 한 뜸 바느질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크다고 합니다” 따위처럼 ‘뜸’을 쓰는 일이 흔한데요. 우리말에서 ‘뜸’은  “ 짚, 띠, 부들 따위로 거적처럼 엮어 만든 물건(비, 바람, 볕을 막는 데 쓴다)”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에,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속속들이 잘 익도록 하는 일” “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 “물에 띄워서 그물, 낚시 따위의 어구를 위쪽으로 지탱하는 데에 쓰는 물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의 하나”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어느 것도 ‘바느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바느질할 때 실을 꿴 바늘로 한 번 뜸. 또는 그런 자국” “실을 꿴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을 세는 단위”를 뜻하는 말은 ‘뜸’이 아니라 ‘땀’입니다. 따라서 ‘한 뜸 한 뜸’이 아니라 ‘한 땀 한 땀’으로 써야 합니다.

Posted by margeul

배움의 중요함을 얘기할 때 ‘면장도 알아야 한다’거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 따위로 말합니다. 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이지만,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좀 이상한 표현이 됩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 속의 ‘면장’을 동네 이장 위 또는 군수 아래의 면장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예전에 한 후배에게서 그런 얘기를 듣고 웃었던 일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면 서기’만 돼도 무척 똑똑하고 높은 분인데, ‘면장(面長)님’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높은 분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래서 면장(님)이 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이치에 맞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위 얘기의 ‘면장’은 이장님보다 높지만 군수님보다는 낮은 ‘면장님’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습니다. 이때의 ‘면장’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는, 즉 ‘면면장(免面牆)’이 줄어든 면장(面牆 또는 面墻)입니다.

 

                         영화 <공자>의 포스터

 

이 말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시경의 ‘수신’과 ‘제가’에 대해 공부하고 익혀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지요.

 

그러고 보면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썼던 말이고, 우리나라 면장제가 확립된 것은 1910년 10월 일제가 수탈정책을 강화하고자 하부 지방행정조직까지 정비할 목적으로 ‘면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때부터이니, 조금만 생각해도 ‘알아야 면장을 한다’의 ‘면장’이 面長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알아야 면장을 하는군요.

Posted by margeul

 어제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문상을 갈 때는 부조를 하게 됩니다. 이때 조위금 봉투나 그 안의 단자에 글을 쓸 적에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우선 봉투에는 앞면 중앙에 ‘부의(賻儀)’를 적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근조(謹弔)’라고 써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더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처럼 한글로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자(單子 :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 돈의 액수나 선물의 품목, 수량, 보내는 사람의 이름 따위를 써서 물건과 함께 보냄)에는 그렇게 적을 수 있으나, 봉투에 문장으로 쓰는 것은 어색하므로 이 말을 봉투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견해입니다.

 

 


부조를 하는 사람의 이름은 뒷면 왼쪽 아래에 적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봉투 앞면에 ‘賻儀’와 ‘이름’을 쓰고 뒷면 왼쪽 아래에 주소를 적기도 하는데요. 원래 주소는 단자에 적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단자를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단자를 쓰지 않고 봉투에 돈만 넣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이것 역시 국립국어원의 공식 견해입니다.


단자는 흰 종이에 씁니다. 이때 조심할 것은 단자를 접을 때 조의 문구나 부조하는 금액, 이름 등이 접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또 부조하는 금액을 ‘금 ○○○○원’이라고 써야지, 마치 영수증을 쓰듯이 ‘일금 ○○○○원정’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참, 부조하는 사람의 이름 뒤에는 보통 아무것도 쓰지 않지만, 굳이 쓰고 싶다면 ‘근정(謹呈)’이라고 적습니다.

 

이 밖에 친인척이나 가까운 사이에서는 소상(小祥 :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이나 대상(大祥 :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에도 부조를 하는데요. 이때는 봉투에 ‘전의(奠儀)’나 ‘향촉대(香燭代)’를 쓰면 됩니다.


그리고요. 제가 저 앞에서 ‘조위금’을 굵게 표시했는데, 그 이유를 아세요?


문상을 가면서 부조하는 돈을 가리는 말로 많은 사람이 ‘조의금’을 쓰는데요. 문상까지 가서 부조를 한 것이라면 ‘조의금’보다는 ‘조위금’을 쓰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입니다.


조위금(弔慰金)은 “죽은 사람을 조문(弔問)하고 유가족을 위문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내는 돈”이고, 조의금(弔意金)은 “남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내는 돈”으로, 의미상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조문(남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뜻을 드러내어 상주를 위문함)을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Posted by margeul

문상을 가서 상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머뭇거리다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을 생각 없이 전한 분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아마 그런 말 중에는 결례의 말도 적잖았을 것입니다.

문상을 갔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말실수는 상제에게 “그나마 호상이라 다행입니다”라며 ‘호상’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호상(好喪)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를 뜻하는 말로, 대개 화목한 가정을 이끌면서 천수를 다 누린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제3자끼리 “그래도 김 영감님은 호상이야” 따위로 써야지, 상주 등에게 직접 건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하더라도 부모나 집안 어르신의 죽음을 비통해하지 않을 후손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캡처

 

그러면 문상을 갔을 때 상주 등에게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말은 침묵입니다. 상가에서는 무조건 말을 아끼고 삼가야 합니다. 말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애통해하며, 그것을 얼굴로 보여주면 그만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정말 가슴 아파하는 표정이 상을 당한 분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면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정도로 간단히 전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부친상을 당한 상제에게는 “대고(大故)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로, 모친상을 치르는 상제에게는 “상사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 따위로 구분해 썼다고 합니다.

또 남편의 죽음을 맞은 사람에게는 “천붕지통(天崩之痛)이 오죽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는 “고분지통(叩盆之痛)…”을, 형제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을 써 의미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참척(慘慽)을 당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고요. 

하지만 요즘에 문상객이 이런 말을 하면 상주 등이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당황해할 것이 뻔합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을 되레 예에 어긋나는 화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정도로 ‘망극’을 쓸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망극(罔極)’은 부모나 임금에게 상서롭지 못한 있이 생겨 지극히 슬플 때 쓰는 말입니다. 따라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나 형제자매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에게는 ‘망극’을 써서는 안 됩니다.

이는 문상객뿐 아니라 상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상은 말로써 하지 않는 것이 모범이듯이, ‘죄인’인 상주는 더욱 말을 아껴야 합니다. 문상객의 말에 그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나 “고맙습니다”로 문상을 와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요. 요즘에는 상주가 지인들의 틈에 끼어 술도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죄인’의 바른 몸가짐이 아닙니다.

Posted by margeul

세상에는 진실의 탈을 쓴 거짓말이 참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국민의 뜻’일 듯합니다. 아니, 자기들이 언제 제 얘기를 듣기나 했나요? 그런데도 그들은 툭하면 저와 우리 가족을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팔곤 합니다.

 

특히 자기들에게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저를 포함해 ‘침묵하는 다수’를 운운하며 온갖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무슨 점쟁이나 심령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입도 뻥끗하지 않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그리 잘 안다는 건지… 소가 웃을 일입니다.

 

더욱이 ‘침묵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자기 뜻을 밝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시민정치 아닙니까? 아무튼 국민 운운하면서 정작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펴는 정치인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런데요. 우리 주변에는 정치인들(모든 정치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의 말 못지않은 거짓말들이 떠돌아다닙니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었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샤를 페로가 지은 <엄마 거위 이야기집(Contes de ma mere l‘oye)〉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페로가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를 신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페로가 소설 속에서 신데렐라에게 신긴 것은 유리구두가 아니라 ‘하얀 털신’입니다. 프랑스판에 ‘vair(일종의 흰색 털)’로 적힌 것이 영어판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verre(유리)’로 잘못 인쇄됐고, 이를 그대로 들여온 우리나라에서는 신데렐라가 주욱~ ‘유리구두’를 신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거짓말은 누구를 상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내용도 훨씬 동화답게 하니, 괜찮을 듯합니다.

Posted by margeul

독도에서 바둑대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거친 날씨와 귀항시간 등이 겹쳐 중도에 봉수(바둑을 두다 중간에 멈추는 것)를 하고, 울릉도로 돌아와서 마지막 승부를 가리기는 했지만, 독도를 찾은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둑을 두기는 정말 두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네요.

 

그런데요. 당시 저는 독도에서 바둑대회가 열린 것만큼이나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울릉도 호박엿’이 원래는 ‘울릉도 후박엿’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9세기 초 울릉도 개척 당시 이주민들이 처음 만들어 먹은 것은 ‘호박엿’이 아니라 ‘후박엿’이었다고 합니다. 섬에 자생하는 후박나무의 진액을 넣거나 열매를 맷돌에 갈아 넣어 엿을 만들었던 거지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수인 후박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과 섬 등에 자생하는데, 나무껍질인 ‘후박피’는 위장병이나 천식을 치료하는 한약재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초기 이주민들이 ‘후박엿’을 만들어 먹은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척박한 땅을 일구느라 생긴 위장병과 천식 등을 치료하기 위해 엿을 만들면서 후박의 진액이나 열매를 넣었던 거지요. 생활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런 것을 후박나무를 잘 모르는 타 지역 사람들이 후박엿과 발음이 비슷한 호박엿으로 부르면서 ‘호박엿’이 퍼지게 됐다고 합니다. 이것은 울릉도 주민들은 다들 아는 얘기더군요.

 

그런데 울릉도의 후박나무를 보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데다 호박이 값싸고 구하기도 쉽다는 경제적 측면에서 30~40년 전부터는 아예 호박만을 이용해 울릉도 특산 엿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울릉도 호박엿’은 정말 호박엿인 셈입니다.

 

이런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237호로 지정된 ‘울릉 사동 흑비둘기 서식지’의 후박나무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나무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 나무는 예전엔 마을 사람들에게 ‘후박엿’ 원료를 제공하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지금은 흑비둘기에게만 열매를 내주고 있다고 합니다.

Posted by marg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