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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어린이 날입니다.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밝고 맑게 자라기를 비는 바람이 담긴 날이죠.


그런데 어린이 날이면 부모들이나 신문·방송 등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쏟아내곤 합니다. 바로 ‘조막손’입니다.


내일 분명 숱한 언론들이 “조몰락 조몰락… 초보 조막손 장인을 꿈꾸다” 따위처럼 어린아이의 손을 ‘조막손’으로 표현한 글을 쏟아낼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을 ‘조막손’으로 표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조막손’이란 “손가락이 없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정상적인 손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손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인간승리를 보여준 짐 애보트(오른손의 손가락이 거의 없음)나 모데카이 브라운(오른손의 손가락이 3개뿐임)이 조막손이(조막손을 가진 사람)입니다.


‘조막손’의 조막은 ‘조각’의 옛말로 보입니다. 옛 문헌에 ‘조각 구름을’을 ‘조막 구루믈’로 쓴 것이 보입니다. 즉 손가락 전체가 아니라, 일부 조각이라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 ‘조막손’인 셈입니다. 모든 아이의 손을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의 작은 손을 귀엽게 이르는 말은 ‘고사리손’입니다.

 


이제 주변에서 누군가 아이들의 손을 가리켜 ‘조막손’이라고 말하면 한 번 째려본 후에 ‘고사리손’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조막손’의 조막, 즉 ‘조각’의 옛말인 ‘조막’은 쓸 수 없지만, ‘주먹’의 작은말인 ‘조막’은 바른말입니다. “조막만한 게 까부네”라고 할 때의 ‘조막’ 말입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요. 누구는 ‘어린이는 어른의 교사’라고도 했습니다. 어린이가 곱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이 애써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흔들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언어생활에서는 어린이들을 홀대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김씨는 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아홉 살짜리가 그런 일을 하다니 대견하다” 따위 예문에서 보이는 ‘-짜리’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짜리’는 도포짜리·삿갓짜리·양복짜리 등처럼 “의관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그러한 차림을 한 사람을 낮춰 일컫는 말”입니다. 두 권짜리, 석 되짜리, 100원짜리 따위처럼 “값이나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얼마의 값 또는 수량을 가진 ‘물건’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사람의 나이를 세는 데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른에게는 절대 쓰지 않는 이 말을 어린아이에게는 마구 쓰는 어른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전들이 ‘-짜리’의 뜻에 “나이 뒤에 붙어, ‘그 나이의 사람임’을 낮춰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덧대 놓았습니다.


어떤 말의 뜻이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말의 생성-성장-소멸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짜리’를 “나이를 세는 말”로까지 성장시켜 놓은 사전들의 처사는 마뜩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짜리’가 나이를 세는 말로 적당하다면 ‘일흔 살짜리 노인’이나 ‘스무 살짜리 청년’ 등으로도 쓰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유독 어린아이 나이 뒤에만 ‘-짜리’를 붙이는 언어습관은 어린이를 업신여겨서 그러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짜리’의 뜻을 사람의 나이를 세는 말로까지 넓혀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듯한 말인 ‘-짜리’를 앞으로 쓰지 않는다면, 일부 사전의 잘못을 고쳐 잡을 길이 남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나이를 세는 말로는 무엇이 적당할까요. 그것은 바로 ‘-배기’입니다. 이 ‘-배기’는 한때 일부 사전이 ‘-바기’를 바른말로 삼기도 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는데요. 지금은 모든 사전이 “나이를 나타내는 말에 붙어, 거기에 걸맞은 나이를 먹었음을 뜻하는 말”로 ‘-배기’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나 조카 등이 세상에서 물건 취급을 받기 바라지 않는다면 ‘-짜리’라는 말부터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margeul

 

                                                      옥 가락지

 

우리말에는 한자말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뜻과 달리 엉뚱하게 쓰는 말도 참 많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죠.

 

한 언론이 미세먼지 관련주, 옥석구분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옥석구분은 참 괴상하게 쓰인 말입니다. 왜냐고요? ‘옥석구분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라는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옥석구분의 한자표기는 玉石俱焚입니다.

 

<서경(書經)> ‘하서(夏書)’에 나오는 玉石俱焚옥이나 돌이 모두 불에 탄다는 뜻으로, 옳은 사람이나 그른 사람이 구별 없이 모두 재앙을 받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옥석구분옥과 돌을 가린다는 의미의 玉石區分으로 아는 듯한데요.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느 국어사전에도 玉石區分은 없고, ‘玉石俱焚만 올라 있습니다.

                                                   평양 신양리 대동강변의 돌멩이들

 

따라서 좋고 나쁨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의 표현을 하려면 옥석을 잘 구분해야 한다라거나 옥석을 가려야 한다등으로 풀어 써야지, ‘옥석구분을 잘해야 한다따위처럼 사자성어로 쓰면 안 됩니다.

 

인구에 회자되다따위로 많이 쓰이는 회자(膾炙)’도 잘못 쓰는 경우가 많은 한자말입니다.

 

김신조 부대로 더 유명한 부대다. 이들의 신출귀몰한 행태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1976년 한독맥주사건은 증권업계를 발칵 뒤엎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한다등의 예에서 보듯이 회자는 신문과 방송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글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단골 메뉴중 하나죠.

 

그러나 앞의 예문들에 나오는 회자회자의 참뜻을 모르고 쓴 말입니다. ‘회자의 회()고기나 생선의 회를 뜻하고, ()구운 생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구에 회자되다사람들이 회와 구운 생선을 맛있게 먹듯이, 행동·행실·작품 등이 좋은 쪽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를 뜻하게 됩니다. 나쁜 일에는 쓸 수 없는 표현인 거지요.

Posted by margeul

언제부터가 사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방송 저 방송에서 사극이 줄을 잇고, 많은 이야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사극을 보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성은(聖恩)’도 그중 하나입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할 때의 그 ‘성은’ 말입니다.

 

‘성은’은 “임금의 큰 은혜”를 뜻하는데요. 사극 등을 보면 “임금님의 성은을 입어 왕자를 낳았다” 따위처럼 임금과 잠자리를 함께한 것을 말할 때도 ‘성은을 입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러나 “여자가 임금의 총애를 받아 밤에 임금을 모시는 것”을 뜻하는 말은 ‘성은’이 아니라 ‘승은(承恩)’입니다. 한마디로 후대를 잇게 한 은혜라는 얘기죠.

 

또 사극에서는 무수리나 상궁들끼리 싸움을 벌이다가 “내 웃전에 고해 혼구멍내주겠다” 따위로 얘기하는 장면도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때 무수리나 상궁이 ‘웃전’에 고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흔히 ‘윗전’으로 잘못 쓰는 ‘웃전’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이나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웃전’은 임금이 대비마마를 가리켜 말하는 2인칭 호칭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런 말을 무수리나 상궁끼리 싸움하면서 입에 올렸을 리 없습니다. 무수리나 상궁이 임금님 앞에서 ‘누가 어쨌으니 혼내 달라’고 얘기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SBS TV <장희빈>에서 사약을 내리는 장면.

 

참, 사극에서는 ‘사약’도 종종 등장합니다. 임금이 죄인을 죽게 할 때 내리는 독약 말입니다. 그런데요. 많은 사람이 ‘사약’의 한자를 ‘死藥’으로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 약을 먹으면 다들 죽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임금이 왕족이나 사대붕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내리는 독약은 ‘死藥’이 아니라 ‘賜藥’입니다. ‘죽이는 약’이 아니라 ‘임금이 내린 약’이라는 뜻이죠. ‘賜’는 “은혜를 베풀다” “분부하다” “주다” 등의 뜻을 가진 ‘사’ 자입니다.

 

공자의 말씀인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뜻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말)를 받들던 때라, 몸을 상하게 하는 참형이나 거열형을 피한 것만으로도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요. 제가 조금 전에 예문에서 얘기한 ‘혼구멍’도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말입니다. “혼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혼구멍나다’를 비롯해 ‘혼구녕나다’ ‘혼꾸녕나다’ 따위가 널리 쓰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바른말이 아닙니다.

 

현행 표준어규정은 어원에서 멀어진 말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 역시 “혼에 구멍이 나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혼구멍나다’를 표준어로 삼지 않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혼꾸멍나다’를 표준어로 정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margeul

숟가락과 젓가락은 우리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입니다. ‘죽다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로 숟가락을 놓다라는 말이 쓰일 정도죠.

 

그런데요. ‘숟가락젓가락의 표기가 참 묘합니다. 같이 일컫는 말로는 수저라고 하는데, 따로 부르는 말은 숟가락젓가락으로 받침이 달라집니다. 그 이유가 참 아리송합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도 국문학과생인 남자 주인공 이병헌 씨가 지금은 고인이 된 여자 주인공 이은주 씨에게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 이은주 씨가 ,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젓가락은 받침이잖아. 그런데 숟가락은 왜 받침이야?”라고 묻자 이병헌 씨가 숟가락을 들고는 처럼 생겼잖아라고 대답합니다. 어이없는 대답을 들은 이은주 씨가 , 국문과 아니지라고 면박을 주자 이번에는 그것은 4학년 때 배워라고 또 거짓말(?)을 하지요.

 

두 사람의 연기가 참 좋아 좋은 평을 들은 작품입니다. 저도 몇 번 봤습니다. 그때마다 이병헌 씨의 대답에 웃음이 나곤 했습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또 누구는 숟가락은 퍼 먹기 좋으라고 받침을 쓰고, 젓가락은 집기 편하라고 받침을 쓰는 말이 생겨났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모양이 떠 먹기 좋은 처럼 생긴 때문일까요? 그리고 그런 사실을 대학 국문과 4학 때 배울까요? 아닙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표기가 다른 것은 아주 간단한 우리말법 때문입니다.

 

수저는 한 말이지만, ‘숟가락젓가락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선 젓가락은 한자말 ()’에 순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발음할 때 [저까락/젇까락]으로 소리 나므로,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사이시옷을 첨가한 사례입니다. ‘나루+[나루빼]로 소리 나므로 나룻배로 적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수저뒤에 가락이 붙으면서 [저까락/젇까락]으로 소리가 나 젓가락으로 적는 것이라면, ‘가락이 붙어서 [숟까락]으로 소리가 나는 만큼 숫가락으로 써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숟가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의 원말이 이기 때문입니다. “한 술 뜨고 나가거라할 때의 말입니다. 젓가락은 +가락이지만, 숟가락은 +가락인 거죠.

 

그런데 한글맞춤법 제29항은 끝소리가 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소리가 소리로 나는 것은 으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원래 받침을 가지고 있던 말이 어느 말과 결합하면서 으로 변하고, 그런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아주 굳어진 것이라면, 굳이 어원을 밝히지 않고 그냥 발음대로 적는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 숟가락+가락의 구조를 가진 말인데, ‘술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발음하는 것이 편해 예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써 왔으니, 굳이 술가락으로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중에는 원말에 있던 받침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으로 바뀐 것이 꽤 많습니다. 음력 12월을 뜻하는 섣달이 그렇고, 내일을 의미하는 이튿날역시 그러한 말입니다. 음력 11월은 동지가 들어 있다고 해서 동짓달로 부릅니다. 따라서 설날과 이어지게 되는 음력 12월은 원래 설달로 써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이를 섣달[섣딸]’로 발음해 이제는 섣달을 바른말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날의 다음날을 의미하는 이튿날역시 이틀+이튿날이 된 것이고요. 여름에 생풀만 먹고 사는 소를 뜻하는 푿소+가 변한 말입니다.

 

, 저 앞에서 술저수저로 변하는 것은 아들+아드님’, ‘+나무소나무가 되는 현상(탈락)과 같습니다.

Posted by margeul

 

 

우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 깊고, 이웃 간의 예절도 무척 소중히 여기는 민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호칭어와 지칭어, 그리고 존대어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호칭어·지칭어·존대어 등을 잘못 쓰는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아버님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버님이 왜?” 하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남들에게 살아계신 자신의 아버지를 얘기하면서 아버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멀쩡하신 분을 돌아가신 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남에게 자기 가족을 높여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가돈(家豚)’이나 돈아(豚兒)’ 등 돼지에 비유하기까지 했지요.

 

그런 예법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에게는 누구보다 귀하고 높으신 분이지만, 남에게 아버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최근 펴낸 <표준 언어 예절>아버님자식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어머니나 조부모 외의 사람에게 지칭할 때 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표준 언어 예절> 12)에서 보듯이 자식의 위치에서 살아 계신 아버지를 가리켜 아버님을 쓰는 사용례는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역시 아버님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거나 편지글 따위에서 쓴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어머님으로 높여 부르는 것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아내가 남편의 부모를 일컬을 때는 대부분 아버님어머님을 편히 쓸 수 있습니다. 시조부모 앞에서는 아버님을 못 쓰는 정도이지요. 이는 남편이 처의 부모를 말할 때도 비슷한데, 아내는 직장 동료 등 남들 앞에서 시부모를 우리 ()아버님(어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반면 남편은 장인과 장모를 우리 아버님(어머님)’으로 부르지 못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아버지와 관련해 흔히 잘못 쓰는 말에는 선친도 있습니다.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간혹 선친께서는 참 훌륭하셨지. 자네도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야 하네따위처럼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의 선친은 잘못 써도 한참 잘못 쓴 말입니다. 선친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남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은 선대인입니다. 선대인은 다른 말로 선고장이나 선장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남의 살아 계신 아버지는 춘부장’, 살아 계신 어머니는 자당이라고 하지요.

 

이 밖에 누군가 자신의 성을 물었을 때 엄씨입니다따위처럼 자신의 성 뒤에 씨()를 붙여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 또한 예절에 어긋나는 표현입니다. ‘가 높임말이기 때문이지요. 이때는 엄씨입니다가 아니라 엄가입니다, ‘대신 ()’를 쓰는 게 바른 언어예절입니다. 상대방을 얘기할 때는 엄씨이시군요라고 높여 불러주고요.

Posted by margeul

 

설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을미년(육십갑자는 음력의 개념이므로 설날부터 진짜을미년이 시작됩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지어 이웃들에게도 넉넉하게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설 하면 무엇보다 떡국이 떠오릅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고 해서, 부모님께 그러면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 거냐고 묻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한국인은 나이에 참 민감합니다. 싸우다가 불리하면 , 몇 살이야를 외칠 정도로 나이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때문인지 나이와 관련한 낱말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요. 낱말이 많은 만큼 잘못 쓰는 말도 무척 많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터울입니다. 여러분이 입에 달고 사는 터울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평소에 별 생각 없이 터울을 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문과 방송들도 김다현과 강태을은 각각 30세와 29세로 한 살 터울이다” “현대 전성기 시절에는 조성원과 이상민이 있었고, 조성원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을 때는 정재근 전희철(36)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명호(26) 강병현(24) 등 약 10세 터울의 후배가 함께 뛴다등처럼 터울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위의 예문에 쓰인 터울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터울이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와의 나이 차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터울이란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 간의 나이 차이를 나타낼 때만 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배다른 형제자매 사이에도 쓸 수 없는 터울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 사이에 쓸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살 차이로 써야 합니다.

어머니가 같다는 점 때문에 북한에서는 이 말이 한 어미로부터 먼저 태어난 새끼와 그 다음에 태어난 새끼의 나이 차이. 또는 먼저 새끼를 낳은 때로부터 다음 새끼를 낳은 때까지의 동안을 뜻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예전에 누구의 글을 교열 보다가 묘령의 남자라는 표현 때문에 피식하고 웃음을 지은 일이 있습니다. ‘묘령의 남자라니요? ‘꽃미남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묘령의 남자라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봤더니 그를 지켜보던 묘령의 남자 이춘성은 퀴즈만 잘 풀면 부와 명예가 주어지는 회사가 있다며 그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과연 신애의 그 묘령의 남자는 누구?” 등처럼 언론에서도 묘령의 남자라는 표현을 쓴 사례가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나이 앞에는 절대로 묘령을 쓸 수 없습니다. ‘묘령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죠. ‘묘령묘년(妙年)’이라고도 합니다.

 

이 밖에 어떤 나이를 뜻하는 한자말을 잘못 쓰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이와 관련한 한자말을 묶어 보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설 선물입니다.

충년(沖年) :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

 

지학(志學) : 열다섯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방년(芳年) : 스무 살 전후의 한창 젊은 꽃다운 나이. 한때는 여자의 스무 살 안팎의 꽃다운 나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말로 보고 있음.

 

약관(弱冠) : 남자의 스무 살. 또는 젊은 나이.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스무 살에 관례를 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

 

이립(而立) : 서른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불혹(不惑) : 마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

 

망오(望五) : 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하나를 이르는 말.

 

상수(桑壽) : 마흔여덟을 가리키는 말. ()자를 십()이 네 개와 팔()이 하나인 글자로 파자(破字)48세로 봄. 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음.

 

지천명(知天命) : 쉰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

 

망륙(望六) : 사람의 나이가 예순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쉰한 살을 이르는 말.

 

이순(耳順) : 예순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나온 말.

 

환갑(還甲) : 육십갑자의 ()’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예순한 살을 이르는 말. =주갑(周甲), 화갑(華甲), 환력(還曆), 회갑(回甲)

 

진갑(進甲) : 환갑의 이듬해란 뜻으로, 예순두 살을 이르는 말.

 

망칠(望七) : 일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예순한 살을 이르는 말.

 

칠순(七旬) : 일흔 살.

 

종심(從心) : 일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논어>위정편에서, 공자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한 것에서 유래.

 

고희(古稀) : 일흔 살. 두보의 곡강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

 

희수(稀壽) : 나이 일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망팔(望八) :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일흔한 살을 이르는 말.

 

희수(喜壽) : 일흔 일곱 살. ‘자의 초서체가 七十七을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한 데서 유래.

 

팔순(八旬) : 여든 살.

 

팔질(八耋) : 여든 살을 이르는 말.

 

장조(杖朝) : 나이 여든 살을 이르는 말. 중국 주나라 때에,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허락한 일에서 유래.

 

산수(傘壽) : 여든 살. ()자를 팔()과 십()의 파자(破字)로 해석한 말. 사전에는 몰라 있지 않음.

 

반수(半壽) : 여든한 살. ()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一이 되는 데서 유래.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음.

 

망구(望九) : 사람의 나이가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여든한 살을 이르는 말.

 

미수(米壽) : 여든여덟 살을 달리 이르는 말. ()자를 풀면 八十八이 되는 데서 유래.

 

구순(九旬) : 아흔 살.

 

졸수(卒壽) : 아흔 살. ()자의 약자를 구()와 십()으로 파자(破字)해 아흔 살로 봄.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음.

 

망백(望百) : ()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아흔한 살을 이르는 말.

 

백수(白壽) : 아흔아홉 살을 이르는 말. ‘에서 을 빼면 이 된다는 데서 유래.

 

상수(上壽) : 백세의 나이, 또는 그 나이가 된 노인. 장수한 것을 상··하로 나눴을 때 가장 많은 나이를 이름.

Posted by margeul

 

만약 제가 종로 한복판에 서서 “여자에게도 불알이 있다”라고 외친다면 분명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겁니다. 어느 할머니가 작대기를 들고 나와 실성한 놈이라며 냅다 후려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로 여자에게도 불알이 있습니다. 그것도 두 개나.


많은 사람이 ‘귓볼’이라고 부르는 거 있죠? 귓바퀴(겉귀의 드러난 부분)의 아래쪽으로 축 늘어진 살 말입니다. 사람들은 “뺨의 한복판”을 일컫는 말 ‘볼’이 ‘귀’에 더해진 말로 알고 그리 쓰는 듯싶은데요. ‘귓볼’은 바른말이 아닙니다.


‘귓볼’만큼 많이 쓰이는 ‘귓방울’도 마찬가지죠. 이들 말은 광복 이전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부터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귓볼’과 ‘귓방울’로 쓰이는 말의 바른말은 뭘까요? 바로 ‘귓불’입니다. 이때의 ‘불’은 “불알을 싸고 있는 살로 된 주머니” 또는 “불알의 준말”로 쓰이는 말입니다. 결국 ‘귀불알’이 줄어서 된 말이 ‘귓불’이라는 얘기죠. 그러니 여자에게도 불알이 있다는 제 얘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죠?

     귀걸이(=귀고리)를 다는 부위는 '귓볼'이 아니라 '귓불'이다. 사진 | 경향신문DB

 

 

‘귓볼’과 함께 ‘귓밥’도 열에 아홉은 잘못 쓰는 말입니다.


흔히 “귓밥을 팠더니 시원하다”거나 “귓구멍에 귓밥이 가득 찼다”고 말하는데, 귓밥은 절대로 죽어도 파낼 수 없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난다고 해도 귓구멍에 귓밥이 낄 수 없고요.


왜 그럴까요? 우리말에는 그런 말이 없어서? 사투리라서?


아닙니다. ‘귓밥’은 분명 떳떳한 우리말이요, 튼튼한 바른말입니다. 다만 ‘파다’나 ‘차다’ 따위의 말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귓밥’이란 “귓불, 즉 귓바퀴의 아래쪽으로 늘어진 살의 두툼한 정도”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즉 ‘귓불’의 두께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얘기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파내고, 그것이 어떻게 귓구멍에 찰 수 있겠습니까.


“귓구멍에 낀 때”를 가리키는 말은 ‘귀지’입니다. 한자말로는 이구(耳垢)라고 합니다. ‘垢’는 ‘때’ ‘더럽다’ 등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귀지’는 예전엔 ‘귀에지’의 준말로 보던 것인데, 1988년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개정 때 ‘귀에지’는 버리고 ‘귀지’만을 표준어로 삼았습니다. 원말은 사라지고 준말만 남았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지요.


또 더러 ‘귀지’를 ‘귀똥’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는데요. 어째 말꼴이 좀 지저분해 보입니다. 당연히 바른말이 아닙니다.


“귓밥을 판다” “귓구멍에 귀똥이 가득 찼다” “귀에지가 귀에서 쏟아질 지경이다” 따위의 말에서 보이는 ‘귓밥’ ‘귀똥’ ‘귀에지’는 모두 ‘귀지’라고만 써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말로, 더러운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이는 ‘지지’와 “귓구멍 속에 낀 때”를 의미하는 ‘귀지’. 뭔가 닮지 않았나요? 이런 게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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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귀밑을 스치는 바람에 냉기가 가득하네요. 이처럼 추운 날을 따뜻하게 보내는 비법,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웃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웃음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묘약이고, 마음이 따뜻하면 몸도 따뜻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이 글을 읽는 경향신문 독자 여러분이 잠깐이라도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재미난 얘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 때면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동요 말입니다. 겨울이면 무척 많이 듣는 노래죠.

             서울의 마지막 비밀정원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계곡내 연못이 흰 눈으로 덮여 있는 모습. 경향신문DB

 

하지만 우리 귀에 익은 노랫말과 달리 사람의 손과 발은 절대 ‘시려울’ 수가 없습니다. ‘시려워’ 꼴의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왜냐고요?

우리말에서 ‘시려워’라는 말을 쓰려면, 그 말의 기본형이 ‘시렵다’가 돼야 합니다. 낱말의 기본형에 반드시 비읍(ㅂ) 받침이 있어야 하는 거죠. ‘고맙다’가 ‘고마워’가 되고, ‘반갑다’가 ‘반가워’가 되는 것처럼, 어떤 말이든 그 말에 비읍 받침이 있어야 ‘워’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를 뜻하는 말은 ‘시렵다’가 아니라 ‘시리다’입니다. 애인이 없는 사람들이 ‘옆구리가 시리다’라고 할 때 쓰는 그 ‘시리다’가 기본형입니다. 그리고 ‘시리다’를 활용하면 ‘시려워’가 아니라 ‘시려’가 됩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날콩이나 물고기 따위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키는 말인 ‘비리다’가 있습니다. 그것을 “생선이 비려워”라고 쓸 수 있나요? 당연히 없지요. 그러니까 ‘시리다’도 ‘시려워’로 못 쓰는 것입니다. ‘비리다’가 ‘비려’가 되듯이 ‘시리다’ 역시 ‘시려’가 되는 거지요.

추위와 관련해 자주 쓰는 말 중에 ‘오돌오돌’도 참 많이 틀리는 낱말입니다. “얘, 내가 너 기다리느라 얼마나 오돌오돌 떨었는지 아니?”라고 할 때의 그 ‘오돌오돌’ 말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오돌오돌’ 떨 수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사람은 ‘오돌오돌’ 떠는 게 아니라 ‘오들오들’ 떠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오돌오돌’과 ‘오들오들’은 뜻이 다른 말이라는 얘기입니다.

‘오돌오돌’은 “작고 여린 뼈나 말린 날밤처럼 깨물기에 조금 단단한 상태”를 뜻합니다. 즉 날밤을 깨물어 먹거나 누룽지를 그냥 씹어 먹을 때의 느낌, 그게 바로 ‘오돌오돌’한 것이지요.

그리고 “춥거나 무서워서 몸을 잇달아 심하게 떠는 모양”을 뜻하는 말은 ‘오들오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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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의 말씀도 계셨고 하니, 이번 단합대회에는 다들 참석해 주세요”라거나 “부장님 말씀이 안 계셔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따위처럼 ‘말씀이 계시다’는 참 널리 쓰이는 표현입니다. ‘계시다’가 ‘있다’의 높임말이다 보니,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계시다’가 ‘있다’의 높임말이기는 하지만, 아무 때고 ‘있다’를 ‘계시다’로 높여 쓸 수는 없습니다. ‘계시다’는 사람(그중에서도 윗분)이 있다거나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을 높일 때 쓰는 말입니다. 동물이나 사물에는 ‘계시다’를 쓸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계신다’는 가능하지만 ‘구부러진 철사가 펴지고 계신다’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또 ‘할아버지께서 졸고 계신다’는 가능하지만 ‘강아지가 졸고 계신다’나 ‘꽃이 피고 계신다’라고 쓸 수도 없습니다. ‘사장님이 서류를 정리하고 계신다’는 가능하지만 ‘사장님 서류가 계신다’ 역시 쓸 수 없지요.

따라서 ‘부장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셨다(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돼도 ‘부장님의 말씀이 계셨다’는 안 됩니다.

             드라마 <직장의 신> 포스터

 

‘있다’를 아무 때나 ‘계시다’로 높이는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주변에서 높임말을 잘못 쓰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가 ‘높임말이 발달했다는 점’인데, 바로 이 때문에 잘못 쓰는 일도 흔합니다. 모르는 사람이나 윗분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무 때나 높임말을 쓰는 것이지요.

어떤 상품을 파는 현장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고객님, 수리는 가능하지만 새 상품으로 교환은 안 되세요” “고객님, 그 상품은 품절되셨고요. 오늘은 이 상품이 세일 중이세요” 따위 표현도 높임말을 잘못 쓴 사례입니다.

 

이들 표현은 얼핏 아주 친절한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조금만 따져 보면 아주 무례한 표현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교환이 안 되는 것이 새 상품이고, 품절된 것도 상품이며, 세일하고 있는 것 역시 상품입니다. 그런데 상품을 가리키는 말에 존대를 뜻하는 ‘시’를 붙였습니다. 즉 위의 문장은 물건을 사는 고객을 높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파는 상품을 높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높여야 하는 대상은 사람이지, 사물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물과 호응하는 말에 높임을 뜻하는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넥타이를 맨 부장님이 멋있으셔야지, 부장님이 맨 넥타이가 멋있으시면 안 되는 것이지요.

 

또 “잠시 기다리실게요” “일시불로 하실게요” “이곳에 사인하실게요” 등처럼 우리말법도 모른 채 무조건 말 끝에 ‘시’만 붙이면 높임말이 되는 것처럼 쓰는 표현도 문제입니다. 위의 문장은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잠시 기다려 주세요)” “일시불로 처리해도 될까요” “이곳에 사인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다운 표현입니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참된 높임이지, 자기의 일방적인 의사에 ‘시’를 붙였다고 해서 높임의 뜻이 담기는 것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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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생명체입니다.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쓰이는 과정에서 변화·성장하고, 더러는 세월 속에 소멸하기도 합니다. 어제의 사투리가 오늘에는 표준어가 되고, 오늘의 표준어가 내일에는 사어(死語)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말과 글을 화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습니다. 특히 나이가 좀 드신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만 알고 오늘은 모르는 거죠.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대체 언제부터일까요? 우리말에서 ‘아빠’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이고, 표준어로 대접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입니다.

 

‘아빠’는 표준어가 된 후에도 ‘아이들이나 쓰는 말로, 성인이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우리말 표준화법의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국립국어원은 ‘표준 언어 예절’을 정하면서 어른들도 자기 아버지를 ‘아빠’로 쓸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것이 말이고 글입니다.

직장에서 쓰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쓰기 어색하던 말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쓰이곤 합니다.

 

‘형’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죠. “가족 간의 호칭에서 윗사람에게 쓰이는 ‘형’을 직장에서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은 자기와 직급이 같은 동료를 부르거나 가리킬 때는 ‘형’을 쓸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직급이 아래인 사람에게도 ‘형’을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변한 것입니다.

 

다만 직함이 없는 선배, 또는 직급이 같지만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 ‘김형’ ‘이형’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는 ‘형’이 윗사람을 지칭하지만, 사회에서는 ‘형’이 주로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에게 ‘형’을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표준 언어 예절’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형’을 쓰는 것 역시 직장 내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언어습관입니다.

결국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직장에서 ‘형’을 쓰는 일이 과거보다 많아졌지만, 현재까지는 자기와 나이·직급이 같은 동료나 나이·직급이 낮은 사람에게만 쓰고, 그 외에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 직원이 여자 선배를 ‘언니’ 또는 ‘○○ 언니’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는 직장에서 ‘형’이니 ‘언니’니 하고 부르는 것이 귀에 거슬리겠지만,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준 언어 예절’에 벗어난 호칭은 아닙니다. 다만 ‘○ 언니’ ‘미스 ○ 언니’로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표준 언어 예절’은 밝히고 있습니다.

‘선배’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직함을 가진 윗분 중에서는 자신을 ‘○○○ 부장님’ 따위로 부르지 않고 ‘○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불쾌해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기분일 뿐 그것이 우리말 예절에 어긋나는 호칭은 아닙니다. 특히 신문사 등에서는 ‘○ 부장님’보다 ‘○ 선배’로 불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상사에게도 ‘선배님’이란 호칭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만약 독자 여러분의 주변에서 ‘선배’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면 ‘○ 부장님’ ‘○ 선생님’ ‘○ 여사님’ 등으로 불러주세요. 거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산 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줍니까.

아무튼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호칭도 언중(言衆)이 널리 쓰는 사례를 쫓아갑니다.

자, 그건 그렇고요. 직장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종종 이런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엄 부장 : 손 대리, 조 과장 어디 갔어.
손 대리 : 조 과장님, 잠깐 외출하셨나 봅니다.
엄 부장 : 손 대리, 군대 안 갔다 왔어. 조 과장님이라니? 내가 조 과장 밑이야.

어떠세요. 이런 상황을 접한 적 있죠. 특히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이등병 시절에 병장에게 ‘○ 상병님’ 하다가 혼쭐난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 손 대리가 ‘조 과장님’이라고 한 것은 옳은 표현입니다. 직장 내 압존법(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사람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아,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은 일본식 언어 습관입니다. 우리말에서 압존법은 가정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일 뿐 학교와 직장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누가 그러냐고요? 누구긴요. 국립국어원이 그러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회장님께 말씀드리며 “김 사장이 그러는데요”라고 하는 것을 김 사장님이 우연히 들었다면 여러분을 그냥 두겠습니까? 바로 자르겠지요. 그래서 우리말법은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는 모두 존칭어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높여야 할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높여야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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